디자인을 배웠고 디자인의 영역에서 일하고 있지만
나에게 항상 갈증을 느끼게 했던것은 좋다는 기준도
표현의 방법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표현의 근거가 되는 뿌리에 대한 갈증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내가 토해내고 있는 표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하고
현란한 색들과 시각물 속에서
과연 한국이란무엇인가 한국적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다양한 조형적 자산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88올림픽 조영제 선생님 그리고 안상수 선생님 이후로
무엇이 한국 디자인인 것인지
각종 타이포 그래픽 스타일로 판치거나
아니면 빈티지의 감성이라고 칭하는 부분말고
기와의 단청이나 한복의 맵시에서 살짝살짝 여운을 남기고
암시를 느끼게 하는 그 한국의 조형미란 무엇일까.
거대한 스케일과 인구로 밀어붙이는 베이징올림픽보다
굴렁쇠하나로 잔디를 가로질렀던 아이가 더욱 감동스러웠던 것처럼
분명히 한국적인 감동과 그 무엇이 존재한다.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하기에
나는 사진에 대해 감히 답을 달지 못할것이다
이부분에 대해 이렇다할 코멘트도 글도 쓰지 못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 리서치에대한 능력을
이곳에 쏟아보기로 했다.
아마 이폴더가 30페이지 이상 넘어갔을때
그때서야 희미하게나 느낌이 올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적이란 무엇인가
아마 그 시작은 88올림픽이 될듯 싶다.


나에게 항상 갈증을 느끼게 했던것은 좋다는 기준도
표현의 방법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표현의 근거가 되는 뿌리에 대한 갈증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내가 토해내고 있는 표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하고
현란한 색들과 시각물 속에서
과연 한국이란무엇인가 한국적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다양한 조형적 자산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88올림픽 조영제 선생님 그리고 안상수 선생님 이후로
무엇이 한국 디자인인 것인지
각종 타이포 그래픽 스타일로 판치거나
아니면 빈티지의 감성이라고 칭하는 부분말고
기와의 단청이나 한복의 맵시에서 살짝살짝 여운을 남기고
암시를 느끼게 하는 그 한국의 조형미란 무엇일까.
거대한 스케일과 인구로 밀어붙이는 베이징올림픽보다
굴렁쇠하나로 잔디를 가로질렀던 아이가 더욱 감동스러웠던 것처럼
분명히 한국적인 감동과 그 무엇이 존재한다.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하기에
나는 사진에 대해 감히 답을 달지 못할것이다
이부분에 대해 이렇다할 코멘트도 글도 쓰지 못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 리서치에대한 능력을
이곳에 쏟아보기로 했다.
아마 이폴더가 30페이지 이상 넘어갔을때
그때서야 희미하게나 느낌이 올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적이란 무엇인가
아마 그 시작은 88올림픽이 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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